아침에 아내와 베이커리 카페에 왔다.
정말 가을의 시작이 느껴질 만큼 하늘은 높고 푸르고 바람은 선선했다.
기분이 좋아 야외 테라스에 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사랑이 많고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가정을 최우선으로 두는 부모님 아래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그에 반해 나는 늘 불안했다.
칭찬에 인색했던 부모님과 장남이라는 부담은..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많은 강박으로 작용했다.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도, 칭찬보단 다음엔 더 잘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상장을 받아도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그게 이유였을까.. 자라면서 나는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책을 읽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잠을 청하면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고,
쉬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으면 나태한 건 아닌지 불안했다.
잘하고 있어도 내 마음속 목소리가 늘 부족함을 외쳤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별거 아니라고 어색해하며, 속으로는 그냥 하는 소리일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13년.. 그동안 아내는 내가 무슨일을 하던지 잘한다고 칭찬을 해왔다.
내가 서툰 요리를 내놓을 때에도, 사업이 잘 안 되어서 꽤나 큰 손실을 보았을 때에도
잘했다고, 최선을 다했으니 다음엔 더 잘할수 있을 거라고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한다는 말처럼 나는 더 즐겁게, 더욱 열심히 노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마음에 의심이 들기도 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니까 그렇게 좋게 얘기하는거지..난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싶다고..'
그런데.. 이제야 알겠다.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건 객관적인 평가나, 냉철한 분석 따위가 아니라 스스로를 믿는 자존감이였다는걸..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맹목적인 응원만큼 자존감에 도움이 되는 건 없다는 걸..
오늘 아침의 커피 한잔, 아내와의 즐거운 대화에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오롯이 느끼기 시작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결혼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고, 치유받았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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